정세균 대표, 고 이용삼의원 영결실 조사
참으로 비통합니다.
밀려오는 슬픔과 허전함을 억누를 수가 없습니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낸 용기와 열정이 있기에, 한갓 병마쯤은 가벼이 물리치고, 의연하게 다시 설 것으로 믿었습니다.
새 봄이 오는 어느 날 쯤에는, 넉넉한 웃음으로 우리 곁에 다시 오리라 확신했습니다.
허망한 기대만 남은 채, 고인을 영원히 떠나보내야 하는 지금 현실이 믿기지 않을 뿐입니다.
고인의 삶은 꿈과 도전 그 자체였습니다.
꿈을 품고 사는 이 땅의 많은 사람들에게, 늘 희망과 용기를 주는 희망의 사표였습니다.
혹자는 고인이 거둔 성취를 보며, 한편의 드라마 같은 삶이라고도 했습니다. 어린 시절, 탄피와 고물을 주워 팔아가며 학비를 마련하고,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면서도 꿈을 놓지 않았습니다. 꿈을 현실로 만들고, 그 현실을 전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자신에게 닥친 시련과 고난을, 꿈과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 철저하게 자신과 싸워야 했던 고인의 삶은, 고인이 이룬 성취만으로는 이루 다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가난과의 싸움, 척박한 현실을 온 몸으로 맞서며,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가던 고인의 삶 속에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눈물과 시련과 고통이 배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인의 삶은 누군가에게는 꿈과 이상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의미였을 것입니다.
고인께서는 대한민국 헌정사에 오래도록 남을, 훌륭한 국회의원이셨습니다. 서른다섯의 나이에 국회의원이 되시고, 최연소 상임위원장이라는 헌정사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며, 누구보다 성실하고 유능하게 의정활동을 해 오셨습니다.
고인께서는 지역 주민들에게 가족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고인을 지켜봐 주시는 지역 주민들이 아버지고, 어머니며, 형제이고 누이라고 말하던 분이었습니다.
이미 병마가 고인의 몸을 무너뜨려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주민과의 약속을 지키겠노라 다시 정치 일선으로 돌아와 끝까지 헌신과 봉사의 삶을 사셨습니다.
작년 봄, 그 때 고인께서는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힘겨운 투병생활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고인께서는 당신의 몸을 조금씩 무너뜨리는 병마에 굴하지 않고, 남북관계특위위원장으로 남북관계 회복을 위해 남은 힘을 다해 노력하셨습니다.
그 때, 고인의 아픔과 고통을 알았더라면, 그래서 그 무거운 짐을 조금씩 나눠질 수 있다면, 고인을 이렇게 보내지 않아도 됐을 거라는 허망한 후회가 밀려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은 이들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고인의 못다 이룬 꿈을 위해, 민주주의의 발전과 남북화해와 평화를 위해, 앞장서 나가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이제, 사랑하는 이용삼 국회의원님을 보내려 합니다.
파란만장했던 열정과 도전의 삶을 떠나보내려 합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강원도의 아들을, 고인께서 그토록 사랑하던 고향의 품에서 영원히 쉬게 하려 합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용삼 국회의원님!
이제 무거운 짐 내려놓고 편히 쉬십시오!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사는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의 꿈이 되어, 영원히 사소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