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래 원내대표, 제77기 우당 이회영선생 추모식 추도사

  • 게시자 : 더불어민주당
  • 게시일 : 2009-11-17

이강래 원내대표, 제77기 우당 이회영선생 추모식 추도사


□ 일시 : 2009년 11월 17일 16:00
□ 장소 : 우당기념당


일제에 항거하시다 순국하신 友堂 李會榮 선생님의 77주기를 맞이하여, 부족한 제가 추모사를 올리게 된 것은 분에 넘치는 영광이며 매우 뜻 깊은 일입니다.

특히 손주이신 이종찬 전국정원장님은 제가 누구보다 존경하는 어른이며, 저의 정치적 멘토이십니다.  또한 이종걸 의원은 항상 동고동락해온 가장 가까운 동료의원으로서 힘든 야당 생활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당 선생님은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한 백사 이항복의 후손이십니다. 선생님은 내우외환으로 국운이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울 때 부귀영화를 결연히 떨쳐버리시고, 조국독립에 일생을 바치셨던 애국자요, 혁명가이셨습니다.  

1910년 나라를 빼앗길 무렵, 신민회 간부이신 우당 선생님은 백범 김구선생 등과 ‘독립운동기지’건설을 결의하신 이후, 나라를 되찾기 위해 6형제분과 함께 전 재산을 처분하시고, 만주로 형극의 망명길을 과감히 결행하셨습니다. 

만주에서는 조국광복의 인재를 기르기 위해 교육활동을 전개하시는 한편, 독립군 양성을 위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셨습니다. 이 학교는 독립군 양성의 총본산으로서, 여기서 배출된 학생들이 청산리 대첩의 주력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독립을 위해 일신의 영달을 스스로 버리신 선생님께서는 상해 임시정부 수립에 기여하신 이후, 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응징했듯이, 노구를 무릅쓰고 만주군 사령관의 암살을 단행하시다가 체포되시어,
1932년 11월 오늘, 애석하게도 장렬한 최후를 끝마치셨습니다.
 
나라를 잃은 이후 순국하시기 까지 우당 선생님의 생애는 참으로 파란만장 바로 그 자체 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험난함 속에서도 조국이 완전하게 해방되어, 우리민족이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고, 이끌어 갈 후진 양성에 진력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선열들의 이와 같은 피나는 애국정신과 항일정신을 올바르게 정립하지 못하고, 더욱이 독립운동사 마저도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고 있어서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며칠 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했습니다. 조국을 침탈한 일본을 도와 나라를 배신한 사람들을 후손들에게 고발하는 자랑스러운 작업이 그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당선생님처럼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는 분들을 기리는, “독립유공자 인명사전”이 먼저 발행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민족과 역사를 올곧게 지켜 오신 분들의 희생으로 오늘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시지탄이 있지만 오늘 함께하신 모든 분들께서는 友堂선생님을 기리기 위한 바로 이 자리에서,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시대적 소명을 꾸준히 실천해 나가실 것을 감히 제언 드리는 바입니다.

존경하는 우당선생님!
오늘 저는 이종걸 의원과 함께 선열들의 붉은 피와 희생으로 되찾은 우리나라를 조금이라도 더 발전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삼가 말씀 올립니다. 자유로운 통일 조국을 이룩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여, 소외 계층을 따뜻한 동포애로 보듬어야 하는 등, 저희에게 아직도 많은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저희들의 임무를 생각할 때마다 우당 선생님의 고매한 인격을 그리워하며, 선생님의 가르침을 다시 찾게 됩니다. 뜻 깊은 오늘 후손들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희생하신 友堂선생님의 일생을 되돌아보면서, 다시금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선생님의 뛰어난 人品, 혁명가적 결단력, 그리고 대의를 위한 희생과 헌신의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우당 선생님의 기일을 맞이하여 어른의 뜻을 흠모하고 따르는 모든 분들과 함께 선생님의 유덕을 기리며, 선생님의 유가족들을 위해 추모의 뜻을 전하고자 합니다. 선생님 부디 영면하시옵소서.


2009년 11월 17일
민주당 대변인실